토요일인 어제 원래 용산에 가려고 했었지만.. 부모님과의 마찰로 인해 일요일인 오늘에야 용산에 다녀올수 있었습니다. 256메가 삼성램을 알류미늄으로 방열이 되는 램 슬롯에 꽂고 그 반대편에 기존 IBM 128메가 짜리를 꽂았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부팅을 해봤을때는 정말 열이 심각했습니다. 아니 이럴수가 이런식이면 못쓰겠는데.. 하면서 낙담을 했죠.. 튜닝이고 머고 엄청난 열이다.. 하면서 집에 돌아와 조금 있으니.. 전과 비슷한 발열을 보이네요.. 출하당시 불량 테스트 후로 오랜만에 전력이 들어오니 램이 후끈하니 열을 뿜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 확실히 하드의 엑서스도 줄어들었고 체감속력도 많이 올라갔습니다. 원래 512램으로 하려고 했었는데.. 조금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것 같더라구요.. 일요일이라 상가문이 많이 안열어 있어서 조금 가까운대신.. 시중가보다 비싸게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외에 S-VIDEO 단자 3M짜리 두꺼운 것이나 노트북 하드젠더(중국산)과 그외 공씨디나 슬림씨디 케이스등을 구입하고 구경도 마늬 하고 돌아왔습니다. S-VIDEO단자 두꺼운것은 검은색으로 튼튼해보이고 전체적으로 마감이 잘되있으며 포트부분이 금색이라 씽크패드와 잘 어울리는것 같습니다. 4500원에 구입했습니다. 그동안 케이블이 없어서 사용해 보지 못했거든요 ^^ 램업을 하니 확실히 좋기는 좋습니다. 하드의 부담도 덜게 되었고 팜레스트에 위치한 하드의 평균적인 열이 줄어들면서 체감하는 열의 온도도 내려갔습니다. 거기다 램방열판 튜닝도 했으니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제 하고 싶은말은 지금부터 입니다. 제가 발명이나 특허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도서를 읽던중.. TP와 조금 매치되는 부분을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이사람도 다른사람의 말을 인용한 것도 있으니 부분적으로 텍스트를 옮기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을것 같아서.. 이렇게 옮겨 봅니다. 아 손아프겠다..

이글을 많은 분들이 함께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불완전성이야 말로 모든 인공물의 공통점.

    애드리언 포티 역시 인공물의 다양성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고 있다. <욕망의 대상>에서 그는 역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디자인의다양성을 두가지로 설명한다고 지적한다. 그 중 하나는 점점 복잡하고 치밀해지는 기계나 설비 같은 새로운디자인의 개발이 새로운 필요의 지속적인 발전을 낳는다고 보는 조금은 순환론에 가까운 것이다. 새로운 디자인은 조립과 분해를 위한 새로운 공구를 요구하며 이 새로운 공구는 다시 또 다른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인공물의 다양성에 대한 두번쨰 설명에서는 "자신의 창조성과 예술적 재능을 표현하고자 하는 디자이너의 욕망"을 원인으로 본다. 지그프리드 기디온은 <기계화가 지배한다>에서 이 두 이론을 모두 활용하고 있지만, 포티가 시인한 대로, 다양성 가운데 몇몇 특수한 사례들은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둘중 어느 이론도 모든 사례를 포괄적으로 해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가령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등받이조절 의자가 새로운 형태의 가구로 개발되었다. 기디온 식으로 풀이하자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온 그런 식의 의자 디자인은 "앉아 있다고도, 그렇다고 서 있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그런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포즈에서 확인되는" 느긋함에 기반을 둔 그 당시 사람들의 자세에서 나온 것이었다. 기디온은 새로운 특허 가구의 출현은 새로운 욕구에 따른 결과이며, 그 새로운 욕구는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의 응집된 창조력과 다행히 맞아 떨어졌다고 본다. 그러나 포티는 기디온의 논리가 너무 우연성에 기댄다고 비판하면서 "다른 시대에 비해 디자이너가 유난히 창조적이거나 독창적이지 않았던 19세기에" 들어와서 "인류가 수천 년을 허송세월한 뒤에 느닷없이 새롭게 앉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보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포티는 최근의 사례까지 들먹이면서 "기능주의" 이론은 인공물의 다양성을 설명하기에는 부적당한 이론이라고 깍아내린다. "몽고메리워드의 131가지나 되는 주머니칼 디자인이 자르는 방법의 혁신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디자이너가 개별 제품의 형태를 결정할 수 있었다손 치더라도 19세기의 디자이너들에게 "어떤 유형의 제품을 얼마나 많이 만들 것인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이나 자율성이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 등받이조절 의자 같은 물건이 다양하게 개발된 원인을 분석하는 포티의 이론은 "디자인 제품을 그것이 만들어진 사회의 의식과 직접적으로 결부시킨다." 특히 그는 다양성의 주체로 자본가를 꼽는다. "제조업자는 시장이 다양했기 때문에 디자인에도 차별성을 두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그러니까 누구나 사전적 테두리 안에서만 살아가는 분위기였던 셈이다.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하고, 제조업자는 제조만 하고, 다양한 소비자는 다양하게 소비만 하는 식으로. 이런 상황을 못마땅하게 보느냐 마느냐는 어디까지나 각자의 취향에 달린 문제이다.
   세상이 다양해야 하느냐 아니냐를 두고 아무리 갑론을박을 벌이더라도 세상이 다양하다는 것은 눈앞의 현실이며, 따라서 개개의 디자인이 어떻게 해서 유사한 디자인들과 변별되는 특성을 갖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은 그대로 남는다. 제조업자가 다양성을 낳는 일차적 원동력이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상품의 외양을 결정하는 배후의 생각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몽고메리 워드가 만든 131종의 주머니 칼들, 버밍엄의 공장들에서 만들어지던 5백 종류의 전문화된 망치들 가운데 하나를 다른 것들과 구별지어준 것은 경제적 계산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었음이 분명하다. 분명한 구별점이 있다고 할 때 그 구별점을 낳는 힘은 과연 무엇인가?
   노먼도 바살라도 포티도 형태와 기능의 관계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다. 이 단어들은 그들이 쓴 책의 색인 어디를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 저자가 포티가 "잠언"이라고 꼬집었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공식을 좇지 않는다는 전제를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다. 디자인에 관해서 대단히 설득력 있는 주장을 폈던 데이빗 파이역시 기능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자기 사고의 매끄러운 열매만을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그는 구덩이와 씨앗의 줄기까지 드러내며, 디자인 문제를 보는 자신의 핵심적 사유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주장을 "독단"이라고 꼬집는 동시에 기능은 "물건의 고유한 활동"이라는 사전적 정의 역시 비웃는다.
   파이에 따르자면 "기능은 환상"이다. "디자인된 물건이 형태는 선택이나 우연에 의해 결정되며 그 무엇에 의해서든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무엇이 "그렇게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생겼다"는 논리를 비웃으며, "순수한 기능성"을 자신이 경멸어로 사용하는 "싸구려"나 "늘씬한'이라는 용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한다. 파이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명제에 대한 자신의 거부감을 이렇게 털어 놓는다.


             디자인에서의 기능이라는 개념, 심지어는 기능주의라는 독단도, 만일 물건들이 제대로 작동만 한다면야 굳이 관심을 갖지 못할 이유는 없으리라. 허나,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쓰잘데없는 일에 매달려 있는 우리 의식의 밑바닥에는 기왕 제대로 된 물건을 못 만들 바에야 팔리게나 만들자는 발상이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우리가 디자인하거나 만드는 그 어떤 물건도 잘 돌아가는 물건은 아니다. 입으로 야 맨날 그래야 한다고 떠들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말씀이다. 하늘에서 곤두박질친 비행기는 지상에 추락하여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다. 이제는 비행기도 갓난아기처럼 살살 다루어야 할 판이다. 기름은 또 엄청 먹어댄다. 녀석의 수명은 시간 단위로 측정된다. 우리가 쓰는 식탁은 크긱와 높이가 다양해야 하며, 자유자재로 넓이 조절이 되어야 하며, 긁힌 자국이 남지 않아야 하며, 자정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하며, 다리도 없어야 한다....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하나같은 즉흥적으로 임시변통으로 디자인해서 만든 물건, 오래 못 버틸 한심스러운 그런 물건뿐이다.


   파이는 과장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거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가 퍼붓는 독설의 뿌리에는 기존의 어느 것도 완전할 수 없다는 인식이 버티고 있다. 어떤 비행기가 고장으로 항공 사고가 날 확률이 1백만 분의 1밖에 안 된다 할지라도 엄격히 따지고 들면 비행기는 완전하다고 볼 수 없다. 갓난아기처럼 극진히 보살핀다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사고율을 조금 떨어뜨리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완벽한 비행기라면 관리할 필요가 없고, 기름도 거의 안잡아먹으며, 몇천 년까지는 안되더라도 적어도 몇백 년은 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식탁은 또 어떤가. 파티의 규모가 어떤가에 따라서 널빤지를 끼워넣었다가 빼냈다가  해야 하지 않는가. 꼬맹이들이라도 오면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밑에 받쳐주어야만 겨우 음식에 손이 닿는다. 식탁은 우리가 쓰지 않을 때는 멀뚱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걸핏하면 긁히며 때도 잘 탄다. 다리가 달려 있어 우리의 행동 반경을 제약한다. 요컨대 식탁에는 다른 모든 인공물과 마찬가지로 개선할 여지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소리이다.
   하기야 파이가 도처에서 끄집어내어 맹공을 퍼붓는 그 불완전성이야말로 모든 인공물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성인 셈이다. 물건이 발전 해갈 수 있는 것으 바로 이런 특성 때문이다. 파악된 문제점과 상상 속에서의 해결책이 우연히 맞아떨어질 떄 디자인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공물의 발전을 그런 식으로 보는 시나리오는 우리에게 점점 나은 디자인을 제공해야 할 터인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 역설의 해답은 디자인의 필요조건들은 언제나 서로 어긋나기 마련이며 따라서 "조화는 불가능하다"는 파이의 통찰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디자인은 크든 작든 실패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요구 사항 가운데 이것저것을 무시했거나 절충했거나----절충은 어느정도의 실패를 견제하므로----둘 중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디자인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디자이너나 고객은 어떤 부분을 어느 만큼 실패로 처리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모든 물건의 모양은 자의적인 선택의 산물이다. 당신이 절충 조건을 바꾸면----가령 안전성이 떨어지더라도 속도는 빠르게, 약간 불편은 하더라도 원가는 싸게 등등의 요구들----당신은 디자인되는 물건의 모양을 바꿀 수 있다. "요구 사항들의 논리적 귀결"이 디자인으로 나타나는 경우란 결코 없다. 요구 사항들 자체가 자기네끼리 모순을 빚고 있는 마당에 논리적 귀결이라니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그러므로 파이가 앞서 언급한 만찬 식탁은 실패로 보아야 한다. 두명이건 열두 명이건 앉혀야 하고, 몸집이 작은 아이와 몸집이 큰 어른을 두루 앚혀야 하며, 긁히거나 때가 타는 일이 없도록 표면이 보기에 좋게 깔끔히 마무리되어야 하고, 발에 자꾸 걸리적거리는 다리는 없어야 한다는 그 모든 맞물린 조건들을 한꺼번에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심히 관찰하면 이런 트집을 잡을 수 있는 일상용품은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널려 있다. 그러나 파이의 의도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며 나 역시 트집이나 잡으려고 이 책을 쓰지는 않았다. 우리는 다만 이 불완전한 세계를 이루고 있는 기발한 일상용품들은 디자인의 앞에 가로놓여 있는 난관을 극복한 성공 사례로서 떠받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런 전제가 깔려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완벽한" 디자인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며, 하나의 물건이 다른 물건으로터 나오면서 더 나은 상태를 향해 끝없는 변신을 이루어가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휴.. 겨우 옮겼다. 다 타이핑 했어요.. 훌훌. 어떤가요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셨나요? 아무 감흥이 없더라도 저를 원망하지 마시고 글을 읽고나서 눈이 빨갛게 충혈되셨더라도 저에게 아무 말씀하지 마십시요.. 강요는 하지 않았어요.. ㅡㅡ;; 자.. 우리 제한된 선택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으로.. 선택합시다....

TP를 선택한 power user를 꿈꾸는 skmmmm이...